즐기는 것/오됴와 판때기

2015.04.07 추가된 LP음반

덜덜이스쿱 2015. 4. 7. 20:40

 

 

 

음반값이 너무 올라버려 고심끝에 질렀다.

 

 

 

 

 

 

오래전엔 3~4천원이면 구했던 김광석 LP

 

이제는 십만원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현실 ㅠㅠ

 

4집은 CD와 LP가 동시발매되었고

 

상대적으로 LP음반 판매가 안된탓에

 

50만원 정도의 몸값을 자랑하니 앞으로 소유하기 틀린듯 싶다.

 

아쉬운 마음에 저렴한 2집..

 

 

 

 

 

 

김광석 4집 재발매 음반

 

재발매 된지 얼마 안됐음에도 가격이 오르는 듯 싶다.

 

 

 

 

 

 

음.. 생각보다 음질이 별로다.  -.-; 김민기 보라색 자켓 음질은 원래 이런건지 어쩐건지..

 

 

 

 

 

 

박인희 음색이 참 좋다~

 

 

 

 

 

 

 

김정호 (1952.5.27~1985.11.29) 본명은 조용호.


1952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여수경찰서장을 지내고 출판사를 경영했으며 어머니는 국악인[1]이었는데 김정호의 음악적인 재능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외가는 그야말로 국악 집안이라고 할만큼 후덜덜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국악은 물론이요 모든 음악을 하는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받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는 당연히 아들이 다른 길을 가기를 원했었다고 한다. 김정호가 6살 되던 해에 국악에 관심을 보이자 집안에 있던 모든 국악기를 내다 버렸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천성적으로 타고난 재능은 어쩔수 없는지, 김정호는 결국 학교도 때려치고 서울 우이동에 틀어박혀서 기타를 붙들고 살았다고 한다. 뛰어난 음악 감각 덕인지 빨리 기타를 익혔고 이후 미8군 무대에 서던 이상일의 밑에서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 이때 만난 친구가 어니언스로 유명한 임창제. 김정호는 어니언스로 데뷔하는 임창제를 위해서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들을 선물로 주었을 정도였다.


 

이때 김정호가 준 곡들은 "사랑의 진실", "작은 새"로 이 곡들은 먼저 임창제의 노래로 발표되었다가 히트를 치게 된뒤에 임창제는 이 곡의 실제 창작자가 김정호라는것을 밝혔고 김정호는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니언스의 히트곡들을 실제로 만든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1973년,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임창제의 추천으로 당시 TBC의 패티김 스페셜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게스트로 함께 나온 신인가수가 바로 조용필이었다.


 

이후 인기정상의 가수로 잘나가던 김정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1975년에 일어난 "대마초 파동"이었다. 친구인 어니언스의 임창제 뿐만 아니라 김정호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었고 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다. 사실상 음악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대마초 파동에 연루된 다른 가수들은 1979년에 해금조치를 받은 이후로 활동을 재개할수 있었지만 해금조치를 받은 김정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실은 이때에 김정호는 파란많은 일들을 겪고 있었다. 방위병으로 소집을 받았지만 지방공연을 하는 친구를 따라가는 바람에 입영날짜에 입영을 못해서 탈영병으로 영창에 있다가 겨우 나와서 군복무를 마쳤지만 제대하던 때에 호되게 앓은 감기 이후로 건강이 나빠졌다. 진단 결과 폐결핵의 진단을 받은것 때문에 김정호는 해금조치 이후에도 모습을 드러낼수가 없었다고.


 

80년에 오랫만에 앨범 "인생"을 냈지만 폐결핵 증세가 악화되어 인천의 요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충분한 요양을 취하면서 적어도 1년 이상은 치료해야 한다고 했지만 김정호는 결국 4개월 만에 요양원을 뛰쳐나와 음악에 몰두했다.


 

1983년, 김정호는 새 앨범 "님"을 내놓았다. 김정호의 유작이 돼버린 이 앨범은 김정호의 건강때문에 진척 속도가 매우 더뎠다고 한다. 숨이 차서 한소절을 녹음하고 휴식한 뒤에 다시 녹음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 탓에 무려 5개월이나 걸려서 겨우 녹음을 마칠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김정호는 유난히 꽹과리를 붙들고 새 앨범을 만드는것 보다 꽹과리를 두들기는데 더 열중했는데 이런 한서린 감성이 "님"에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결국 악화된 건강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1985년 11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불과 33살의 나이로.


김정호의 노래에는 묘하게 한국의 정서인 한이 서린 노래들이 많은데 김정호 자신의 인생이 파란만장하고 고통의 연속이었으니 한이 서릴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분은 요즘 통 활동을 안하시는구나.

 

 

 

 

 

 

얼굴은 못생겼어도 음색은 일품인 송창식~~!!

 

 

 

 

 

 

LP로 듣는 이상은 음색도 참 좋다. ^^*

 

 

 

 

 

 

아~ 혜은이 제3한강교가 듣고싶어 두어달 찾았는데 이제서야 구했네.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흑백티브이 가요프로엔 늘 혜은이, 이은하 둘이 안나온적이 없었는데

 

이젠 너무도 까마득한 옛날이네.. 후~~

 

시간이 흘렀어도 음악 너무너무 좋다. 제3한강교~~

 

강물은 흘러 갑니다~~ 아~하~~ 제3한갈교 밑을~~

 

 

 

 

 

 

 

 

 

독일수입반 3장

 

카르뵘?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영웅"

 

 

 

 

 

 

이 음반은 사장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기억은 안나고..~

 

 

 

 

 

 

파가니니 어쩌고저쩌고

 

좋은 음반이라는데 들어봐야 알겠지?